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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 : 《선교적 만남의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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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신조》(hidden credo)를 인식한 후에
     올바른 선택은 무엇인가? 선교적 만남의 역동을 의식하는 것 입니다.

내면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입니다 .

황금만능주의, 자기중심주의, 과학만능주의, 포스트모너니즘적 사고, 진화론에 근거한 사회변혁, 유물론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사상들은 모든 영역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법 등) 에서 우리가 검증 없이 가지고 있던 추정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체한 문화가 있음을 아는 것은 선교적 만남의 역동성을(교회의소명, 277쪽) 예민하게 의식하도록 만듭니다.
만약에 내가 위와 같은 모습을 하지 않는다면, 
변화되어 세상을 반대하며 세상을 섬기는 선교적 만남의 역동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 시대를 향해 하시는 사역에서 제외될 뿐입니다.
아마도 이런 나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을 대체한 문화의 권세에 굴복했음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다.


내가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가 그 일부인 문화에 조건으로 규정된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신화의 언어로 표현된다.
처음에 나는 이것이 하나의 신화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철저하게 타고난 서구인의 순전함을 내가 유지하는 한,
다른 문화에 대한 진지한 관여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 신화를 의식하지 못한다. 

단순히 “사실이 그렇다” …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신화도 신화로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사실이 그렇다.

서구인도 이 규칙에 대해 전혀 예외가 아니다
-교회의 소명, 275쪽-

위 인용 글의 핵심은 매우 간단합니다

복음이 언제나 문화적 이야기로 표현되며, 따라서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다른 문화적 이야기와 만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소명,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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