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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세계관」은 안경과도 같다 ; 「마음의 지도」

세계관(worldview)이란 용어는 독일어 단어 'Weltanschauung'을 번역한 것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이란 뜻이다.
welt [세계], schanuen[보다]
이 단어는 나중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와 헤르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같은 화란 신칼뱅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기독교 진영에 소개되었다
(완전한 진리, 낸시피어스, 50-51쪽)

1. 안경의 종류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 - 마음의 지도」이다

파란색 안경임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으로 보이는 안경입니다.. 관점이 왜곡된 것을 의미합니다.
파란색 안경은 파랗게 보이고, 빨간색 안경은 빨갛게 보이는 안경입니다. 관점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관은 세계를 잘 항해하는 법을 알려 주는 마음의 지도와 같다. (중략) 그것은 세계가 어떤 모습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일어 준다. 세계관에 고전으로 꼽히는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The Universe Next Door)이라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 우리는 모두 정신적 혹은 개념적 우주를 갖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인생의 근본적인 의문들에 대답을 제공하는 원리들의 그물망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저자인 제임스 사이어(James Sire)는 독자들에게 다른 사람들 곧 "이웃"에 살 고 있는 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정신적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세계관을 검토해 보도록 초대한다 (완전한 진리, 낸시피어스, 49쪽)

2. 이 세상 문화의 《진화론적 세계관》과 기독교 문화의 《창조적 세계관》의 문화적 만남은 고통스러운 긴장을 만들어 낸다

 

3. 문화적 만남이 만들어낸 고통스러운 긴장을 대하는 삶의 방식은 《양립》 혹은 《회피》다

카멜레온 복음 (= 양립) 

자신도 모르게 유혹은 받아 그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적 시각과 혼합주의적 동맹을 맺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선교적 과업에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교회의 소명, 326쪽, 마이클고힌)

문화와 동일시해서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문화의 우상들을 취하는 결과에 이르는 시도가 있다. 교회는 문화적 이야기에 의해 흡수되고 길들여진다. 이것이 혼합주의이고, 이것도 역시 신실한 증언의 전복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그 주변의 색깔을 취하는 카멜레온이나, 조류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해파리의 삶이다. (교회의 소명, 301쪽, 마이클고힌)

화석화된 복음 (=회피) 

《회피》는 우상숭배적인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것은 문화에서 물러나 게토로 들어가는 시도로 이어진다. 다른 장소나 다른 시대에서 기원하는, 신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형태로 물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복음은 적실성 없는 것이 되고, 교회의 증언은 전복된다. 교회가 복음을 문화의 우상숭배적인 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른 시대로 냉동 보조하거나 다른 장소로 옮기고자 시도할 대, 그것은 석화된 화석, 즉 다른 시대에서 온 죽은 잔재가 된다  (교회의 소명, 300-301쪽, 마이클고힌)

 

4. 세상을 위한, 세상에 반대하는 교회(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선교적 만남이 있다면 어떻게 복음이 삶의 방식으로 번역되면서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강력한 요구들을 타협하는 일이 없이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또는, 교회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이 사안에 접근하자면, 어떻게 교회는 다른 주들이 다스리는 특정한 장소에서 교회의 삶, 행위, 말을 통해 모든 문화적 삶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신실하게 증언할 수 있는가?

세상의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중재하심을 중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부르심은 지금 그대로의 그들에게 말씀하시지만, 그들이-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부르시기 위해 지금 그대로의 그들로부터 불러내신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긍정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또한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정하신다. 지금 그대로의 그들로부터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교회의 소명, 293쪽, 마이클고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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