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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유배자의 영성

🐯💥애즈베리 대학교 ; (청년 부흥) 부흥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평범하지만 목마른 사람들이다..

(동영상 보기) - 에즈베리 부흥 2023

미국 켄터키에 있는 대학입니다

각성(awakening) 운동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great awakening(대각성) 이 되고,
revival(부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2023년 2월 8일(3주 전입니다..) 시작된 이 예배는 대학교의 채플 강당에서 정기적인 예배로 시작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쯤 가스펠 합창단이 노래를 불렀고, 
일부 학생들이 예배가 끝난 후에도 자발적으로 기도회를 이어가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기까지 여기를 떠나지 말고 머무르라"는 말씀에 반응하여 20~30 여 명이 남아서 에배하여 기도하게 되었고.....수업에 들어간 학생들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다시 돌아와 예배하면서 숫자는 계속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 그후로 3주가 넘었는데도 예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미국 전역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주변 신학교와 교회들의 갈급한 영혼들이 모여들어 함께 주의 얼굴을 구하면서 매일같이 예배가 이어지게 되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예배 장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채플 강당 밖에서 서로 죄를 자백하고 울며 기도해 주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뛰고 있습니다. 또한 인근 다른 대학교에서도 기도모임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1969년 8월 15일 뉴욕의 우드스탁에서 락 페스티발(Woodstock Music and Art Fair)이 열렸습니다.  4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술과 마약, 성의 해방과 자유를 외치며 3일간 퇴폐와 향락을 즐겼습니다. 그곳에는 미국의 암흑과 같은 미래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미국의 젊은이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1970년 2월 3일 켄터키 주의 에즈버리 대학 월요일 채플시간은 평소와 다름없이 천 여명의 교수진과 학생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설교를 대신했던 학감의 간증 후 한 남학생이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셨는지, 그로써 그의 영적인 필요가 어떻게 채워졌는지를 간증했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온 회중 가운데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어 계속해서 학생들이 올라와 마치 제단 앞에 마음을 토하는 것처럼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였고, 온 회중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하나가 되어 조용히 울면서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청년 각성운동(🏀클릭)은 채플 후 한 남학생의 공개적인 회개를 통해 시작되어 수 많은 캠퍼스들과 미국 전역의 전도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자리를 뜨지 않아, 학교 당국은 휴강을 하였고 그 이후 185시간 동안 회개와 찬양과 기도의 불이 타올랐습니다.

2023년 지금,  다시 부흥의 부어짐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시 시작된 하나님 사랑의 부어짐은 현재 계속적으로 진행중이며, 다른 캠퍼스들과 미국 전역으로 점화되어, 우리 나라(*한국)에도 번져, 나의집에도 부어(outpouring)지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책을 통해 부흥을 읽어 보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실제로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골방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부흥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목마른 사람들이다
부흥은 평범한 사람들이ㅏ.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짖고,
모든 세대에 일하시기를 구하는...
부흥은 실제로 있습니다.
책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것은 퍼져나갈 것입니다.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
그분은 귀하십니다.
그리고 전 여기 있습니다.
주님 앞에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
이것은 실재입니다.
"

라고 말하는 한 참석자(Gabe"의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출처: Bethel of Korea,  클릭하여 보기)

🧨 '에즈버리 리바이벌 2023' 이라는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에는 4,500 여명이 모여
- 특별한 평안을 느꼈다
- 성령의 임재를 느꼈다
- 회개했다

등의 경험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 예배당에 들어가려고 8시간 줄 섰던 시간마저도 "또 하나의 완벽한 설교였다" 라고 고백한 네티즌 '제니퍼 헨더슨'은 "줄을 서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믿게 된 직후와 같았다"고 고백했다.

🧨 이런 현상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나타나고 있다

1. 영적 대각성, 부흥이라는 관점과
2. 좀더 냉철한 시각이다.

유기성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려고 예배당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것,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해보신 분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피터 그레이그가 '부흥에 대한 증언에 있어서, 나는 냉소적이기보다는 어수룩한이 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저 역시 냉철하기 보단 어수룩하게 한 조각이라도 믿고 싶습니다." 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애즈버리 대학교 크레그 키너 교수의 글을 게시하며 그의 의견에 동의함을 나타냈습니다. 페이스 북의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애즈버리 대학의 교수,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 우리 채플에서 일어나는 부흥과 그것이 캠퍼스와 그 너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내가 희망적인 이유
애즈버리 대학의 대부분의 수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같습니다. 10시가 되기 몇 분 전쯤, 학생들은 채플에 참석하기 위해 휴스 강당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매 학기 일정 수의 채플에 참석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루의 루틴처럼 채플에 옵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은 달랐습니다. 축도 후 가스펠 합창단은 마지막 합창을 부르기 시작했고, 그 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초월적 감각에 사로잡혔고 채플을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머물면서 계속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저는 건너편 애즈버리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었을 때 즉시 예배당에 가서 직접 보기로 했습니다. 도착했을 때 수백 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간절히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회개와 죄에 대한 통회를 표현하고 치유, 온전함, 평화, 정의를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팔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소그룹으로 모여 함께 기도했습니다. 몇몇은 강당 앞의 제단 난간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엎드려 누워 있었고, 다른 이들은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늦은 오후 예배당을 떠났을 때, 그리고 저녁에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목요일 아침 일찍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오전 중반에는 수백 명이 강당을 다시 채웠습니다. 저는 매일 예배당을 향해 달려가는 여러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다음 날인 목요일 저녁에 이르자 오직 서서 있을 공간만 남았습니다. 미 전역의 학교들인 켄터키 대학교, 컴벌랜즈 대학교, 퍼듀 대학교, 인디애나 웨슬리안 대학교, 오하이오 기독교 대학교, 트란실바니아 대학교, 미드웨이 대학교, 리 대학교, 조지타운 대학교, 마운트 버논 나사렛 대학교 등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속속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는 금요일에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참으로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저는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녁이 되자 건물은 수용 인원을 넘어 꽉 찼습니다. 매일 밤 일부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은 예배당에 머물며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인 현재, 이 기세는 둔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최근 몇 년 동안 이 용어가 정치적 행동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와 혼재되어 사용되었음을 압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애즈버리의 어느 누구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은퇴한 신학자인 내 동료 교수인 스티브 시맨즈(Steve Seamands)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가 학생이었을 때 경험한 1970년의 유명한 ‘애즈버리 부흥’과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부흥은 일주일 동안 수업을 중단하게 했고 그 후에도 2주나 더 지속된 저녁예배로 계속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 가서 일어난 일을 나누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애즈버리가 부흥에 있어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일찍이 1905년에 일어났고 또 다른 하나는 2006년 학생 채플이 4일 동안이나 예배, 기도 및 찬양으로 계속 이어지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배당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거의 깨닫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처럼 유한한 시간과 영원함이 함께 동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범하지 않은, 짜여지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석 신학자로서 저는 있는 것 보다 부풀리는 과대 광고에 지쳤고 조작하는 것을 매우 경계합니다. 저는 때때로 공허할 뿐만 아니라 해로운 "부흥"과 "성령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보아온 배경(특히 감리교-성결 전통의 부흥주의 부분)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런 움직임과는 어떤 것도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압력이나 과장이 없습니다. 조작이 없습니다. 감정만 고조시키는 부풀림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대부분 조용하고 고요했습니다. 희망과 기쁨과 평화의 혼합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실제로 거의 만져질 수 있을 듯 생생합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샬롬의 느낌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부인할 수 없이 강력하지만 또한 매우 부드럽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분명하고 거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타고난 끌림이 있습니다. 아무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와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고 싶어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신비한 방식으로 움직이심을 압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임의로 분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8).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놀라운 일"이라고 부른 것과 존 웨슬리가 "비범한" 사역이라고 부른 일을 하십니다.
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중요하고 필수적인 많은 부분이 매일의 순간, 즉 매일의 훈련과 예식(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의를 추구하기 위한 순간적인 결정, 희생적인 행위, 이웃에 대한 사랑, 조용한 절망 속에서 숨 쉬는 기도에서 일어난다고 굳게 믿습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비범한" 행위가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성령의 "통상적인"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기이한' 일도 제자도의 머나먼 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 동료인 제이슨 비커스(Jason Vickers)가 상기시켜 주듯이, 우리는 우리를 지탱하기 위해 은혜안에서 이러한 경험을 주시는 성령님 그분보다 그런 경험을 의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우리가 성령과의 이러한 놀라운 만남을 기꺼이 인식하고 송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채워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휴즈 강당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약속된 보혜사가 현존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분석하거나 적절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는 것에는 제 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몇몇 현 학생들과 최근 동문들은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위해 함께 기도해 왔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는 말할 수 없이 감격했다고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대학에서 신학적 인류학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 지난 금요일에 만났을 때 학생들에게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과의 예배와 친교를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임을 상기시켰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창조된 목적인 텔로스입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보다 더 완전하게 살아 있고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 즉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평화, 온전함, 거룩함, 소속감, 사랑은 우리가 지향하도록 만들어진 삶으로 향하는 가장 작은 창일 뿐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지복직관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 실재의 가장 희미한 그림자이기만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거룩한 사랑일 것입니다.
저는 또한 학생들에게 우리가 서로 연합하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도록 창조되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당에서 경험하는 예배는 예배당 밖에서의 교제로 이어지는 실제적인 의미를 가져야합니다. 이것은 현재 인종과 민족을 둘러싼 어려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합니다.
이전 부흥에는 항상 교회와 사회 모두를 위한 열매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의 역사가들조차도 2차 대각성 운동이 우리나라(미국)에서 노예제를 종식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이러한 부흥으로 어떤 열매를 맺으실지 기대됩니다.
금요일 점심시간에 제 아들 조시아(Josiah)가 저를 찾아와 자기와 친구들이 제단에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무리에는 네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각각 다른 언어로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아들은 “천국에서도 이와 같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마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에 대한 가장 희미한 반영인 것 같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마치 작은 천국의 조각이 여기 지상에서 우리에게 찾아온 것과 같습니다.
복음은 참될 뿐만 아니라 눈부시게 놀랍고 신비롭게 아름답습니다. 채플 강당을 떠날 때마다 저는 주님의 선하심을 맛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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