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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예배인가 쇼인가》- 참 예배자의 모습 : 예배 행위

(다른 글 보기: 참예배의 요소: 예배의 대상)

《예배인가 쇼인가, 13-15쪽, A.W Tozer》에 대한 정리

- 예배하지 않고 감탄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감탄없이 예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탄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대상을 존경할 수는 있지만,
존경하지 않는 대상을 예배할 수는 없다.

 

- 우리를 매혹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감탄과 존경만으로 부족하며 매혹하는 신비로운 힘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예배를 향해 열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어떤 대상을 예배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예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이 무한히 커지면 결국 '숭모 adoration' 가 된다

● 하나님께서 모든 예배를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든, 주중에 삶의 예배를 드리든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교회에서 주일 예배 혹은 삶 속에서 삶의 예배 보다 공허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배인가 쇼인가   63쪽에서 공허한 예배에 대해 지적한 것을 깊이 되새기는 것은 유익하다고 생각을 하여 그대로 인용하여 안내를 받고자 합니다."오늘날의 수 많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몹시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예배드리기 위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는데도 한 가지 불길한 결핍 요소를 들라면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충분하다. 그것은 사로잡을 정도로 충분히 아름답고 웅장하다. 예복에 나타난 여러 가지 상징, 음악, 시, 그림, 웅변술, 엄숙한 말투, 좋은 음향 시설,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예배자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는다. 그러나 종종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감동이 없을 때가 있다. 목회자와 회중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알지도 못하고 갈망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말 그대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여기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삶으로는 그분을 예배하지 않는 일을 쉽게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당신의 삶이 예배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의 입술도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전부, 즉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해야 한다.
믿음, 사랑, 순종, 충성, 행위, 생명, 이 모든 것들이 예배에 동참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삶의 각 부분을 둘로 나누어
한 쪽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참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죽음의 목전에서, 장엄한 신비 앞에서 우리의 영성이 깊어진다고 믿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 참예배가 되려면 《성령님》과 진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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