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온한 인생이었다
나는 인생의 꿈을 달성했다. 큰 기업에서 훈련을 받았고 작은 회사도 운영하였으며 꿈에 그린 사장도 해보았다. 또한 멋진 여자와 결혼에서 자녀를 낳아 바빳다. 평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 그저 외롭고 힘들뿐이다.
#2. 이게 전부란 말인가?
이것이 남은 생에 내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외롭고 힘들게 하루 하루를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우울에 빠지는 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후에서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쉽게 보이지가 않았다. 사업이 망하고 내 인생을 혼자서 살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도와주세요!'라고 할 때, 나의 기력은 한 방울도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3. 총체적 진리로 이해하는 것
기쁨은 아내에게서 공급을 받았고, 위로도 아내에게서 공급을 받았다. 하지만 목적을 되찾을 수 없었다. 기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가 열렸고, 약 1년 동안 눈물 속에서 살았다. 이것은 막혔던 댐이 허물어지고 장마로 인해 매마른 논두렁같은 내 삶의 여러 영역에 복음의 생수가 콸콸 쏟아 붓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성경을 더욱 알기 원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인도하심을 알게 되었다. '신학이 너를 이끌지 못하고, 내가 너를 인도한다'고 하셨다.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처럼 신앙서적과 성경을 읽으면서 기쁨과 목적을 되찾는 길은 바로 기독교를 총체적 진리로 새롭게 이해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4. 총체적 진리로 이해하지 못할 때 나의 모습
1) 내면의 갈등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공부한 이후에 막연히 알게 된 것은
첫째, 교회의 전문 사역자로 사는 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준거틀이 아니다.
둘째,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지로 나가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제 내면의 갈등은 사라졌다. 이같은 내면의 갈등에 대해 명확히 얘기해 주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신학적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세상에 속하지도 못하고, 교회에 속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다.
"거짓이나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직장인의 모습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자체는 가정에 필요한 재정을 채워 주고 경력을 인정받고 전문가로서 명망을 얻게 하는 등 세속적 견지에서 규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나의 도덕적 관점은 사적 영역에 확실히 보관하여 감추고, 공적 영역에서 회사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하도록 권고받았다.
그런데 어떤 직업이든 이처럼 상충된 두 방향으로 나뉘는 것에 대해 반갑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금전적 보상, 동료들의 칭찬, 조직 내에서의 승진 등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 - 영적 의미-가 있기를 기대한다. 나의 신앙은 삶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었기에 나는 신앙의 힘을 온전히 경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직장의 삶은 비그리스도인과 같았고 나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전혀 없었다.
"너도 하나님을 믿어? 몰랐네 ~" 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은 내 머리를 가격하여 충격에 빠지게 하지만 이내 그 충격을 극복하는데 익숙해 졌다. 하나님을 믿지만 나는 마른 뼈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생기는 빠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 잘못된 삶인줄도 모른 채 말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2) 의구심; 하나님을 섬기는 일... 일터에서 맡겨진 책임 + 종교적 활동 .....? 글쎄 ! 아닌 것 같은데...
교회에서의 봉사 및 섬김, 성경공부, 전도 등과 같은 종교적 활동을 듬뿍 쌓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가? 그렇다면 직장에서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터는 단순히 물질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외에 본질적으로 영적 의미는 없는 것인가? 즉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에 불과한 것인가?
3) 삶과 신앙의 분리;
반복되는 회개, 우울, 죄책감, 자신에 대한 정죄, 죄를 수용, 마음의 평안이 없음...무수히 많다.
#5. 이분법들 - 성/속의 분리, 공적/사적의 분리 - 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파편화시키고 찢어지게 하며 불에 그을린 가죽처럼 일그러지게 한다
이분법적 사고 체계는 나에게 있어 매우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나의 삶은 찢어지고 파편화되었다.
성경에서 배운 영적 진리들은 업무 이외의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적합한 여가활동으로 전락하였으며, 내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끼쳐야 할 영향력은 일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권능은 내 삶의 제한 영역에서만 영향력을 미칠 뿐이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부활의 권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말이다. 매우 좋은 최고의 것을 알아 보지 못한 채 가려진 영적 분별력은 계속하여 나의 삶을 조각내고 정죄를 하고 있었다.
#6. 이분법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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