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 앞에 놓인 심판과 채찍을 알아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되는 아침입니다.나는 심판이 예비된 거만한 자인가, 아니면 채찍이 예비된 어리석은 자인가? 심판이 유익한가 채찍이 유익한가?
잠언 19장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인간의 모습들과 그들을 향한 교훈이 가득합니다. <나의 모습들>도 보이니 마음이 힘드네요 ~
《패역하고 미련한 자》,《발이 급한 자》,《가난하여 친구가 끊어진 자》,《거짓 증인하는 자》,《거짓말 하는 자》,《가난한 자》,《지혜를 얻는 자》,《명철을 지키는 자》,《미련한 자》,《방백을 다스리는 종》,《사치하는 미련한 자》,《노하기를 더디하는 것》,《허물을 용서하는 것》,《집과 재물을 조상에게서 상속받음》,《슬리로운 아내》,《게으른 사람》,《태만한 사람》,《계명으 지키는 자》,《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는 자》,《많은 계획이 있는 사람》,《인자한 사람》,《가난한 자》, 《거짓말 하는 자》,《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경외하는 자》, 《게으른 자》, 《거만한 자》, 《어리석은 자》,《가난한 자》,《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지식의 말씀에서 떠나는 아들》,《망령된 증인》,《심판이 예비된 거만한 자》,《채찍이 예비된 어리석은 자》
#1. Totally Useless, Only Grace
잠언이 거울이며 확대경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무익하며, 오직 은혜만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주님 ~ 도와주세요~
부드러운 마음을 주세요, 주님이 기대하시는 지혜의 자리에 있게 하소서, 도와주세요 ~
하나님의 큰 은혜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부어주세요
주의 임재가 저의 양식입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잠언 말씀은 확대경이 되고, 거울이 되어 추한 내면을 들어냅니다. 나는 이렇게 더러운가?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속한단 말인가? 저는 평소에 우울에 빠지는 편이 아니기때문에 그 배후에 드러나지 않은 이유를 곰곰히 따져 보고 있습니다. 기쁨과 목적을 되찾는 길은 십자가와 부활의 총체적 진리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막혔던 댐을 허물고 바짝 말라 버린 나의 삶의 여러 영역에 복음의 생수를 콸콸 쏟아 부은 놀라운 지혜이며 통찰입니다.
#2. 《하나님의 다림줄》을 나의 삶에 비추어 봅니다
만약 이사야 1장에 언급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라면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듣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나의 삶에 비추어 보기를 기대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가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멀리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적 분별력이 가려진 상태가 아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여 도와 주세요 ~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워진것. 이것이 나에게는 저주이며 심판이 이미 내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이 우리 가운데 회복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의 직장에서도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심판은 가능성 없는 자에게, 채찍은 가능성 있는 자에게 해당한다는 새벽바람(네이버 블로그)의 <자유, 무거운 책임> 제목의 글에서의 진술은 지혜이며 통찰이다.
심판과 채찍은 아마도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일 것이다
(출처 새벽바람: https://blog.naver.com/boriddek5025/222578043549)
하나님의 다림줄이 회복되지 않으면 저와 당신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3. 영적인 굶주림에서 다시 찾은 기쁨
지난 글에서 《세계관》을 학습하였습니다. 직장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순전히 공리주의적인 방편에 불과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위에 있는 <나의 모습들>이 우울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내 삶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이 제가 찾은 궁극의 희망이며 기쁨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마침내 받게 될 보상을 기대하는 지혜인 것은 분명합니다.
일과 사업은 순전히 세속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현대사회의 세계관을 저는 극복하고 싶습니다. 저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무장하여 영적인 굶주림을 채우고, 기쁨을 다시 찾는 과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여, 더욱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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