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합니다. 여기서 작성된 내용은 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스)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가 일하는 것은 단순히 생활비를 버는 것이 아니며 직업 소명의식을 찾는 것입니다. |
그 중에는 알렉산드리아의ㅣ 클레멘스(Clement), 오리겐(Origen), 히레로니무스(Jerome),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포함된다.
이들의 저술에는
1) 플라톤이 주장하는 세계의 이중적 기원(형상, 질료)을 거부하고
* 플라톤의 경우
- 질료는 본질적으로 더럽고 악하다는 입장
- 형상은 본질적으로 깨끗하고 선하다는 입장
2) 창조의 선함을 강하게 주장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 편으로는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물질 세계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적어도 일부나마 흡수한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 다.
그는 플라톤주의자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기독교로 회심했다.
그렇다고 플라톤주의의 모든 요소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각색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1) 창조의 선함을 단언하면서 - 창조자 인정
2) 플라톤식의 형상, 그 형상을 본떠서 물질 세계를 만들었다 - 이층 구조를 초래함
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창조 세계에 대한 이 같은 이원론적 견해는 자연히
그리스도인의 《삶 에 대한 이원론적 견해》 를 낳았다
보다 높은 영적 생활에 도달하는 길은 신체적 욕구를 거부하고 끊는 것이었다.
세상에서의 일상적인 일 - 그가 "활동적"(active) 삶이라고 부른 - 은
수도원에 은둔하면서 기도와 묵상을 영위하는 "관상적"(contemplative) 삶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결혼을 독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겼으며,
심지어는 결혼한 성직자에게 아내와 같이 살지 말라고 권할 정도였다
기독교화된 플라톤 주의
부분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일종의
기독교화된 플라톤중의가 중세를 가로질러 줄곧
신학자들 사이에 공용어처럼 자리잡았다.
이리스토텔레스
13세기《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금욕주의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전혀 도전을 받지 않았으며,
이러한 《이원론적 견해》 는 《그리스도인의 가치관》 으로 잡았다.
극단적인 이층적 이분법, 즉 상층부와 하층부를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는 이른바
"이중진리론"(double-truth theory)을 호소하였다.
이것 역시 난센스이다. 이를 반대한 인물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라는 도미니크회 수도사였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각색은 여러 면에서 기독교 사상에 유익한 영향을 미쳤다.
아퀴나스는 상층부에다 은총(grace)를 얹고, 하층부에는 자연(nature)를 두었다.
그는 중세에 유행한, 세계를 부정하는 금욕주의 사상에 큰 타격을 주었고
창조 세계에 대한 보다 성경적인 견해를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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