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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유배자의 영성

✝️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 1️⃣ 💥가증한 행위 : 《문화》와 《선교의 만남이 》갈등을 만들어 낼 때....집에서 예배 참석하는 것이 더 편하여 좋고, 💥교회 예배 참석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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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처럼 궁금증이 있으신지요? 예전처럼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온라인 예배 참석이 문화가 되고 있습니다. 《집에서 예배하는 것》 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되어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게》 해드릴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궁금증이 들어서 생각을 정리합니다

전폭적으로 하나님 경배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어디에서든지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몇가지 신앙적 근거를 모아 생각의 단초를 시작합니다

■ 1 ; 신명기 18장 9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계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라는 말씀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 2 ;"내 존재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로 인하여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인가,쇼인가, A.W 토저,19쪽)
하나님이 불완전한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예배인가,쇼인가, A.W 토저,18쪽)

■ 3 ;"선별적인 순종은 전적인 불순종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복음1, 여주봉, 243쪽)


《집에서 예배하는 것》 이 《가증한 행위》 일 수 있는가? 《선별적 순종》 일 수 있는가? 《선별적 순종》 일 수 있는가?

제 생각에 문화의 표층 아래에 숨겨져 있는 가증한 행위들이 될 수 있다고 드네요.
이것은 나의 가치관, 신조가 되어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떠나는 과정에 있게 되며, 영적인 분별력이 가려져,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제외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1. 모든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자기 생존(생명)을 구하며, 자신을 위해 ,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얻기 위해 댓가를 치른다

물건, 사람, 하늘에 있는 것, 땅에 기는 것, 물에 있는 것 등은
자기형상과 자기모양대로 자기의 생명을 위해 모든 것(기능, 능력, 목적, 목표)을 낸다.

욥기 2:4 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Then Satan answered the LORD and said, "Skin for skin! All that a man has he will give for his life.)

2. 하나님은 자신이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을 알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다시 부르고 계신다

그 분의 목적이란, 하나님을 만나며(예배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은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참예배를 드린 후에야 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3.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만약에 내가 예배를 지겨워한다면 아직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며 또한 신앙의 본질(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떠난 것이다.

 

4. 따라서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니케아 신경은 우리가 '한 하나님, 즉 천지를 지으신 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지으신 분,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 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런 분을 예배해야 한다.

3-1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르침 4가지

위의 4가지 가이드 라인은 A.W 토저(1897-1963))의 저서 《예배인가, 쇼인가,14쪽》에 있는 내용입니다.
1) 예배하지 않고 감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감탄없이 예배는 불가능하다
2) 예배의 대상을 존경하지 않고 존경할 수는 있지만, 존경하지 않는 대상을 예배할 수는 없다
3) 우리를 매혹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예배 대상이 될 수 없다
4) 어떤 대상을 예배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서 예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2 예배는 사랑하는 대상과의 연합을 추구한다. 나의 마음과 내가 존경하는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는 적극적인 행위가 예배이다

 

5. 내 삶 속에 있는 가증한 행위들

 

6. 삶의 두려움, 자연 현상의 두려움 자연스러운 감정에 불과하며, 예배가 아니다 ☞ 착각에서 구출되어야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거나 놀라운 자연현상에 직면했거나 밤의 적막 앞에 섰을 대 느끼는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반드시 영적인 것은 아니다(물론, 때에 따라서는 영적인 것일 수도 있음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중략) ...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그분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분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 예배'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단지 '자연 숭배'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느낄 뿐이다. " (예배인가,쇼인가, A.W 토저,21쪽)

7.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마음 속에 불편한 요소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해서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잇다고 해도, 그것은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니다.
일주일에 오직 주일 하루, 그것도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참석한 예배로 나의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것은 참예배가 아니다.

특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삶의 예배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설사 주일에 교회를 방문한 주일 《공예배》 또한 참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물며 주일의 공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에 《집 예배》 참석은 분명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행위라고 생각이 듭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삶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갖고 있다면,
몸이 아파서 혹은 기타 이유로 《집 예배》를 참석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비록 불완전한 예배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이 불완전한 예배일지라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분은 나의 예배 또한 받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었나니....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시 137:2,4)라고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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