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본문: 요한복음 18:1-11
ㅇ 제목: 배반을 당했을 때 - 파괴적 사건을 발생했을 때,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나의 관점이 아니라 성경적 관점으로 보면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배신(背信, betrayal), 배반(背反/背叛)》 은 서로 같은 표현이다.
《배반》이 주는 의미는 너무 슬프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것까지 공유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버리고 등을 돌린 것에 대해
심리적,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1_ 하나님이 당한 배반
하나님께서 갈대아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Ezekiel)에게 급히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좀처럼 하늘들을 여시는 경우가 없는데, 그렇게 하셨다.
궁창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이시면서 에스겔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반역하는 이스라엘》 이라고 하셨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반역하는 민족,
나를 반역한 민족에게 보내노라"
(에스겔 2:3)
자신의 백성이며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에 대한 표현이 《반역하는ㅇㅇ》 이었다.
이것이 남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너무나 절절하며 너무도 슬프다
《반역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하실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의 분노와 격노를 일으키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 를 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가증한 것들과 역겨운 것들의 형상, 곧 우상숭배가 그들 속에서 거하시는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들였고 결국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전쟁 포로가 된 그들은 비천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노예가 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비록 남 유다 백성들이 이교도들 가운데로 내던지고, 그 나라들 가운데로 흩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찾아가 작은 성소가 되겠다고 하셨다.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땅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하셨다.
또한 모든 가증한 것들과 역겨운 것 을 제거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들 속에 새 영을 넣어 주어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로 된 마음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하셨다.
소유물로 삼으셨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 ~
끝날까지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는 약속을 지키심에 감사합니다.
주여~ 제가 주님을 배신하였다면 알게 하시옵소서.
모든 가증한 것과 역겨운 것들을 알게 하시고
주님만 섬기며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께만 영광을 올리기를 원합니다.
#2_ 예수님이 당한 배반
우리가 아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배반을 합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지만 가룟 유다에게 차별 대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않기" (요한복음 18:9) 위한 예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약속을 하였기에 그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너무나 놀랍습니다. 자신을 배반하는 자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배반할 사람을 받아 들일 수 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배반의 환경은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인지하든 못하든 간에, 이 모든 것들은 일 →사건 →역사가 될 것입니다. 파괴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사건에 대해 올바로 알 수 있게 하며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원리를 성경적 관점에서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 자료: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마틴로이드존스, 지평서원)
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배반의 환경을 지배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누가복음 22:3)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 세상 일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듯 합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 같습니다.
세력을 떨치게 된 것은 마치 군사력, 정치력, 힘, 권세, 전략 때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높여 주셨기 때문에 그들이 큰 세력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당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 배반의 환경이란, 나에게 있어서 불합리한 환경/ 처우, 억울한 환경/ 처우, 불법적으로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배반의 환경은 '안전 지대에서 벗어난 것' 입니다.
'안전 지대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지역으로 가는 것' 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경우도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선 줄로 알았을 바로 그때에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전개되는 역사
배반의 환경을 하나님의.계획에 따라 전개되는 하나님의 도구로 인식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처음부터 종말을 보시는(이사야 46:10) 하나님이 모든 일에 목적을 두셨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끝을 밝히며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터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모든 일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사야 46:10)
-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갈라디아서 4:4)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때가 이르렀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배반의 환경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옵소서
(요한복음 17:1)
3) 하나님의 때를 따라 전개되는 역사
배반의 시간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전개되는 하나님의 시간표라고 인식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와 상의하기 위해 멈추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일을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을 조정하여 하나님의 뜻을 향해 움직이기를 원합니다.
결코 늦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있기를 원합니다. 제외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에 따라 행하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역사
- 하나님이 하늘들과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아담과 이브에게 원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였습니다.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를 위해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인간을 만드시면서 세상(에덴동산)을 다스리게 하는 대리자의 권한을 주신 것은 「하나됨」의 위험성까지 감수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담을 통해 세상(에덴동산)의 통치권이 사탄에게 넘겨졌습니다.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에덴동산)의 소유권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 인류 세계 역사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구약 성경에서, 이방 나라들의 등장과 소멸은 오직 「이스라엘의 운명과 관련하여 의미」를 지닙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모든 역사는 궁긍적으로 「오직 교회의 역사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닙니다.
- 세상(에덴동산) 다스림이 하나님에게 맡겨졌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불합리하고 불법이 많으며, 모든 악행과 모든 가증스러운 것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다스리기 때문에 이런 지경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 뒤에 공중 권세잡은자가 사람을 조정하기 때문에 이 지경입니다.
-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계속해서 이 세상에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있는 자신의 백성들을 불러 세상으로부터 나와 자신의 나라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완성되어, 무한한 영광이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겪는 환경은 오직 나를 향한 하나님의 훈련계획과 하나님 나라와 밀접하게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인식이 내가 격는 사건들을 통해 소망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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