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맨 아래에 있음)에 합당하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 ~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로마 군사들은 예수님을 채찍질 하고 있습니다. , 아직 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늘 그렇게 하였듯이 .
이것은 불법적인 행동들입니다. 법을 집행한다는 자들이 불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평소에 빌라도는 그렇게 지시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군사들이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서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잘못을 찾지 못했다고 알림으로써(요한복음 19:4) , 향후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대비하여 손절을 하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존 기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빌라도의 위치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올바른 반응은 무엇인가?
만약에 내가 유대인의 위치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올바른 반응은 무엇인가?
만약에 내가 군사의 위치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올바른 반응은 무엇인가?
나도 역시 내가 생각하는 안전 지대를 위해 타협(실수)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빌라도의 안전지대는 로마 총독으로서의 법률적, 정치적 지위였고,
유대인의 안전지대는 유대인의 법이었으며,
군사의 안전지대는 동일하게 자기 소임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안전지대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혼란에 대해 올바르게 반응하고자 한다면,
일어나고 있는 문제나 혼란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즉, 올바른 안전지대에 안착하기 위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은 그 답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혼란은 올바른 접근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 분명한 답을 찾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 하나님의 다루심에 불평하기도 하며
▶ 하나님이 매우 이상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나를 다루실 때는 특히,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 악한 영의 간계에 빠진 것도 전혀 알지도 못하며
▶ 어쩔 줄 몰라하며 잘못된 결론을 내리려 하곤 합니다
성경이 항상 나에게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에게 하나의 방법을 알려 줍니다.
경솔하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1_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한 질문, "너는 어디서 왔느냐?", 에 대해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셨든지, 혹은 뇌까리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시어 일축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빌라도가 느낀 두려움(요한복음 19:8)은 예수에 대한 경외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희미하게 찾아온 영적인 진리를 붙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을 하기 이전에 많은 질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가 두려움의 출처가 어디서 왔는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아신 것 같습니다. 궁금해서 혹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이었다면 예수님은 대답을 하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쌍한 빌라도여 ~ , 영생을 놓쳤구나 ~ 가엽도다, 그대여 ~
경건한 삶을 사신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유익이 되지 못한다며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73편은 우리가 입술로 경솔하게 말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을 알려줍니다.
악인의 형통함과 교만한 행위를 보고서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다
(시편 73:13)"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시편 73:16)"
그는 자신이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경솔하게 말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악인의 형통함과 교만을 통해서 잘못된 불평과 불만을 하였던 시편 기자의 깨달음이 저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올바른 접근 방식을 찾고 싶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했던 과거를 회개합니다.
주님, 제가 겪는 혼란과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주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
너무 경솔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어쩌면 나의 욕심과 탐욕이 혼란과 어려움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전가를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여, 은혜를 베푸시어 저를 용서하소서
제가 저의 관점에서 빠져서 주님을 의심한 것을 용서하옵소서
앞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아멘.
#2_ 나의 안전지대
나의 안전지대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포도나무 교회(경기도 용인 소재)의 가르침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그 앞에 그대로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안전지대라고 생각합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하박국 1:13)"
이처럼 올바른 접근방식을 성경이 제시하였습니다.
모든 문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루시는 문제
▶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개인적인 어려움
▶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상황
▶ 이해가 안 되고 혼란스러운 북한 문제
▶ 비상식적인 우리나라 정부
#3_내가 약하여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
본문의 내용은 마치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심에 대한 오해로 예수님이 패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용인하실까?
▶ 왜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실까?
▶ 왜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실까?
이런 질문이 생길 때,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믿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실뿐 아니라, 그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나의 거룩하신 이여,
주께서는 영원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죽지 아니하리이다
오 주여,
주께서 심판하시려고 그들을 정하셨나이다
오 능하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바로잡아 주시려고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하박국 1:12)"
본문: 요한복음 19:1-16
- 군사들의 예수님 조롱
- 유대인들의 의도와 저의
- 빌라도의 두려움과 정치적 기술, 그리고 재판장으로서의 최종 결정
제목: 내가 약하여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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