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_유배자의 영성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무지에서 믿음으로

#1_ 내 열정이 만든 안전지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문제와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성경이 약속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대적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악한 영은 나를 좌절시키고 또한 가능하다면 두려움을 주고 더 나아가 믿음을 저버리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는 나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고자 나의 마음에 다양한 유혹들을 제시합니다.

너무나 합리적이고 상황에 맞는 제안(유혹)이라서 그들의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습니다.

나의 안전지대를 확보하기 위한 열심과 열정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결과에 이른 것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한국의 모습은 얼마나 끔찍한 상황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유황 불이 내려와도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죄와 부도덕과 악덕이 걷잡을 수 없이 펴지고, 정부의 일을 맡은 권위 있는 자들마저도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공정하고 정직하게 법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무법이 만연하며, 누군가가 선지자 혹은 대언자처럼 사람들을 동원해 항의하려고 하면 권력 있는 자들이 변론과 논쟁을 일으키고 저지를 합니다.

도덕과 정치의 전반적인 타락에 이어 아주 심각한 종교적 타락이 나타났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세상을 향해 중심에서 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낍니다.

세상 경주에서 뒤로 밀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소외감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워서 은밀히 예수님을 따랐던 아리마대의 요셉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는데,

"나는 제자이기는 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없습니다. 자칭 제자인 듯하여 민망합니다.

#2_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무지에서 믿음으로

오늘 묵상 본문에서

1)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Joseph of Arimathea)은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2) 니고데모(Nicodemus)는  무지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렇게 변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를 만나느니
차라리
새끼들을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니라
(잠언 17:23, 킹 제임스 흠정역)

#3_ 갈보리 십자가의 만남

저는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만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강퍅한 마음에 새 살이 돋게 하소서

한 영을 새롭게 부으사 오늘도 거듭나게 하소서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무지에서 믿음으로

주의 길 위에서 걷게 하소서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오니

주님, 저의 영혼육을 깨끗하게 하소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 형통하여도

그들 위에 계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심에 대한 오해를 갖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의 선하심과 거룩함을 찬양합니다

 

주여

오늘도

저를 만나주시고

저에게 친밀하게 말씀하옵소서

저를 가르치소서

지혜를 구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끝.

묵상

본문: 요한복음 19:38-42

제목: 예수를 장사 지낸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

내용:

- 사회 지도층 인물이었고,

- 어려움을 극복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었지만

- 자신의 안전지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김

- 그는 부자였음 (요즘으로 말하면, 수도권 내에 자신의 묘지를 준비함, 부패방지용 장사 용품을 충분히 준비함)

- 마태복음에서, 그는 부자라고 소개, 자기 소유의 새 무덤에 장사 지냄

  마가복음에서, 그는 존귀한 공회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함

  누가복음에서, 그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함,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결의할 때, 저희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고 밝힘

기타:

- 아리마대: 예루살렘 서북쪽 30여 Km 거리에 있는 성, 에브라임(사무엘의 고향) 혹은 벧엘(아브라함, 야곱이 제사 지낸 곳) 근처

나름대로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또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임

- 요셉: 이스라엘에서 흔한 이름,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라는 뜻, 요즘 말로 부모 찬스를 많이 쓸 수 있는 유복한 사람

추가 묵상

 

(인용: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마틴로이든 존슨)

신앙의 영역에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과학적 사고의 문제'와 '역사적 사실들의 문제'입니다.

두 가지 난제 중에서 '과학의 문제'는 물질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며 합리적 접근 방식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우주 세계를 초월하는 '정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위대한 과학적 지식과 경험은 없지만 이 시대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고백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면서 나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 듯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난제는 '역사적 문제'입니다.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지 못해서 생기는 역사의 신비함에 대한 문제를 의미합니다.

이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및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 권력자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됩니다.

그런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불만이나 혼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점에 대하여 성경은 명백하게 가르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불만이나 혼란을 받았던 이유를 말씀드리면 여러분도 알 수 있습니다.

1) 가장 주된 이유는, 나는 성경을 매우 좁은 의미로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구원 교과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나를 소망 없는 절망에 내버려 두지 않고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이것도 몇 년 전에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성경의 주제가 아닙니다.

 

2) 궁극적으로 성경의 주된 메시지는 온 세상의 상황 및 그 운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상 창조, 인간 창조 그리고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신적인 예언에 담긴 위대한 원리들을 붙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이 노아에게 예언하신 지 120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홍수를 대비하는 노아를 비웃었습니다(창세기 6,7장). 

   그러나 정해진 때에 홍수는 오고 말았습니다.(창세기 19:1-29)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400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된다고 하셨고(창세기 15:13,14)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애굽 땅에서 나왔(출애굽기 12:40-41)습니다.

 

-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백성이 바벨론에서 정확히 70년 동안 포로로 있다가 마침내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예레미야 25:1-11).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정해진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스가랴 1장)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