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 인정되는 곳을 정의하는 방법을 <교회의 소명, 마이클 고힌 저, IVP출판>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만약 「성경 이야기」가 우리의 정체성이 구축되는 장소가 아니라면 자동적으로
다른 곳이 그런 장소가 될 것이며, 거의 분명히 우리의 「문화 이야기」와 「사회적 장소」가 될 것이다
「성경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누구인가?
- 성경 이야기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 우리의 소명은 무엇인가?
-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하나님의 목적들을 섬기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가?
- 우리는 우리의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맥락에서 그 부르심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 이러한 맥락은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형성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북한 지하교회의 교인들은
북한 사회를 지배하는 공산주의 문화와 김일성 사상 등 주체사상을 통해 규정되어 진다.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나치의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을 받아들였다
로마 가톨릭은
히틀러가 기독교를 독일적 가치들의 토대로 묘사했을 때 저항을 중단하고
독일 신들에 연루되었다
공산주의 치하의 러시아 및 동유럽 교회들은
자신의 길을 잃었다. 자신들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숭배적 이야기와 이념을 통해
그들은 정체성을 잃었고 거짓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2. 《정체성》을 바르게 정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나의 모습은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에 순응한 모습이다.
나는 복음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고,
시대를 지배하는 우상숭배적인 이념 (돈, 권력, 부요함, 취미 등) 및 문화(승진, 높은 연봉, 많은 권한 등)에 제단되었다
매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지만 우상숭배적인 공적 교리(설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이른 것입니다) 를 통해 형성된 이교 사회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으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십일조, 섬김, 전도 등 교회 프로그램을 성실히 수행을 했으니 종교적 의무가 나를 안심시켰고 우상숭배적 삶에 만족하게 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그 당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심판대에서 천국과 지옥을 정하는 순간을 맞이하였다면, 천국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끔찍합니다. 기다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선교적 정체성은 내가 세상을 향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립할 뿐만 아니라 나는 세상 문화에 대해서 어떤 거리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만들어 낸다.
세상에서 내가 세상 문화에 대한 나의 태도는 비판적 분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반립과 연대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세상 문화와의 진정한 만남은 동일시와 거부, 예와 아니요, 참여와 물러남으로 요구한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잃는 것은 신실하지 못함을 초래한다"
세상 문화의 비판적 분별을 하지 못하여 선교적 정체성을 잃었을 때 개인과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 가지 방식으로 배신할 수 있다.
반립 → 교회주의(churchinsm)/신성화(sacralization),
연대 → 세속주의(secularism)/세상성(worldliness)
3. 새로운 관점, 즉 《선교사적 소명》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 내고, 허락된 내일을 맞이하겠습니다
남편, 아버지의 역할을 함에 있어서 선교적 정체성을 되찾는 것은 단지 아내를 더욱 사랑하는 것, 돈을 더 많이 벌어오는 것, 자녀들의 양육 문제에 있어서 더 광범위하게 간섭하며 참여하는 것, 혹은 자비롭게 대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 깊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역자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하나님의 아젠다로 자녀를 이동하게 하는 것을 포함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는 것 이외에 준비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국 복음과 문화명령의 연계를 통해서 참된 해석을 통해 「성경 이야기」를 구현하고 전하는 하나님 백성의 역활, 하나님의 백성과 내 주변 문화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그 둘 사이의 선교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중추적인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도구로서 쓰임을 받기 위하여 《선교사적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내적 삶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담당하도록 부르신 역할에 비추어 재형성하기를 선택합니다.
주여, 도와주세요
4.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을 형성하는 중심 원동력은
《복음에 대한 이해》이다
하나님의 창조부터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맥락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부르시는 이유도 모르는 것이며, 그렇기에 일과 노동에 대한 의미도 알지 못하게 된다. 《복음》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아아 한다.
「성경 이야기」가 내 삶의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1) 창조, 2) 타락, 3) 구원의 시작, 4) 구원의 실현, 5) 소명과 문화명령 , 6) 구원의 완성으로 구성된
하나님 연출의 6막 성경 드라마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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