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_유배자의 영성

[☎ 소명] 2. 인생 후반전...어떻게 살아야 하나 ? 차분한 확신 속에서 ; 내가 오늘 살아 있는 이유, 일하는 이유

이제는 차분한 확신 속에서 살아내고 싶다.
《신학적 진리》 속에서 사는 것은 《인내》하며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나의 죄는 없어졌다. 나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브리서 10:17)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죄와 불법에 붙들릴 필요가 전혀 없다.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택함받은 백성이이다. 신분적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고 결단하여 인내를 통해 이루어 내야하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선교사적 삶)을 살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바른 방향으로 걷자.
바르게 다시 시작하자.

지금 이 순간의 삶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었던 것이 주관성의 수렁으로 붕괴되는 사태를 의미하지 않기를 바란다.
설사 그럴지라도 내가 깨달은 것은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며, 모든 인간의 소명이 하나님의 목적들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나의 행동과 선택은 《객관적》이었을까?
언뜻 보기에 《중립적으로》 보이는 우리의 행동 배후에는 《각자의 동기》,《사고방식》 그리고 특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끈적끈적한 《삶의 무게》, 더 광범위한 《문화》와 관련된 《세계관》과 《가치관》이 뱀처럼 또아리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자기중심적인 《이익추구》와 《자기 연민》이 과도하게 표출될 뿐만아니라 역기능적인 행동패턴을 보이는 이유가
배후에 깔려 있는 《문화》에 의해 결정된 《인간적 동기》임을 추적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의 삶에는 불순물이 많으며 담금질과 인내를 통해 순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목적들안에서 걷게 될 것이다. 비록 불순물이 많을 지라도 더 이상 나 자신을 정죄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오늘 하루를 허락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일과 영성》일 것이며, 진정한 《소명》을 깨닫는 것이된다. 《높은 연봉과 사람의 칭찬을 구하지 않는 것》은 내 안에 자리잡은 불순물일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나를 기다리신다. 이것은 내가 목숨을 잃지 않고 《왜 오늘》 살아》 있는가?에 대한 해답의 열쇠이다

1) 죄를 위하여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2) 그 제사를 통해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고
3)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 (히브리서 10:12-13)
4) 주께서 우리에게 맺으신 언약이 있으니, 하나님의 법을 내 마음에 두고 내 생각에 기록하신다이다 (히브리서 10:16)
5) 나의 죄와 나의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신다 (히브리서 10:17)
나는 예수의 피로 정결하게 되었기에 영접한 순간에 즉시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두고 계신다.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연기하셨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쩌란 말인가? 왜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는가?
심지어 그리스도는 기다리신다고 하신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 일에 동참하라는 그리스도의 초청인 것이다.

2.《신학적 진리》는 차분한 확신이다

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이며
2) 사랑하시는 목적들에 대한 확신이다

이것은 N.T.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의 말이다.

그렇다 주님의 초대장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목적과 나의 자원과 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도권아래에서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 거룩함을 받은 내가 이 세상에서 머물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N.T. 라이트의 말씀이 일하는 자세와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그동안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후회스럽다.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신학적 진리 위에서 차분한 확신이 필요하다. 《인내》하며 확신을 붙들 수 있는 《담대함》도 필요하다.
뒤로 물러나 움츠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목적 안에서 《나의 소명》을 분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런 소명이 어떤 과업을 수반한다 할지라도 착수하게 만들것이다.

3. 일은 소명》인 것이다

아무리 하챦은 일이라도 그것은 나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고 끼니를 떼우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일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이며, 초대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우선 과제가 참여(engagement)라는 사실을 실천하고 싶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겠다.
오 주님, 도와주세요.
확신 속에서 인내와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아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