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_유배자의 영성

그림으로 보는 도마의 태도 :🙋🏻‍♂️ 합리적 의심은 🙋🏻‍♂️믿음없는 것인가?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일까? 저는 그렇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것이 교만(위로 높여진 자의 혼, 하박국 2:4)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확실하게 불신 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보다  《합리적 의심을 통해서 믿음을 갖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으며 보이지 않아도 믿는 것》은 더욱 복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했을 때, 디두모 출신 도마는 그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증거가 필요했고 눈으로 확인해야 믿을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위 그림은 도마(Thomas)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는 장면입니다.

카라바조의 1601~1602년 경에 '도마의 의심' 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문을 연 회화예술의 거장이라고 합니다.

카라바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 믿기 위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믿는 것이 믿음이라면,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닌가?
☔️ 보고 믿는 것은 의심인가?

증거와 사실 확인을 통해서 믿는 도마의 태도는 흔한 서민의 모습입니다.

도마가 주님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으며 상처의 진위여부를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매우 의심스러워 하는 그의 표정은 주변에 있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주님의 상처를 면밀히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으로  도마의 손목을 잡고 도마의 손가락이 자신의 상처 속으로 더 깊이 집어넣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겠습니다.

람브란트(네덜란드, 1606~1669, 빛의 화가라고 불림)의 작품입니다.

도마 : 쩔쩔매는 모습

제자들: 크게 놀라고 있으며

오른쪽 아래의 한 제자: 감히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

 

🍇 저의 생각

카라바조의 작품: 경망스럽고 거북합니다.

렘브란트의 작품: 완성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주님을 믿는 자로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잘 나타냄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시편 16:10, 킹제임스흠정역)



그 누가 우리를 의롭다고 하기 위해, 또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나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습니까? 그 누가 구약 시편의 예언대로 실제 부활하사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는다는 것[시 
16:10]을 증명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셔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니 그저 감격하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의, 지혜, 구원, 거룩함입니다.(고린도전서 1:30)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예수님은 도마의 태도에 대해 책망하지 않고,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도마의 태도는 저의 태도와 비슷하기에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다짐을 합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주님 곁에 있도록 하소서.

주님,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을 알기를 원합니다.

 

도마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음을 알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1_ 삶의 두 가지 길 : 이성의 길 vs 믿음의 길

성경은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든 약속이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걷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

 

 

#2_ 피할 수 없는 선택

우리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태도 중 하나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성의 길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며

믿음의 길은 하나님의 통치로서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방법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만일 과학적이고 복잡한 오늘날

어떻게 선지자의 대언(예언)이나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항의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삶의 방식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히브리서 10:38)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10: 38, 킹제임스흠정역)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믿어서 혼의 구원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느니라 (히브리서 10:39, 킹제임스흠정역)

 

 

 

반드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길을 걷기를 선택하고자 합니다.

묵상

 본문: 요한복음 20:24-29
 제목: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옆구리를 보여주심
 내용:
- 예수님의 빈 무덤을 목격했던 도마의 마음 상태: 두려움

 

- 예수님께서 8일이 지난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찾아 오심 
① 도마의 믿음을 위해 : 자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이심으로 도마의 믿음이 생기기를 원하심  도마는 확신을 갖게 됨

 

-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바라는 것: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있는 자가 되는 것
①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더 복되다
②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