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두려움의 시대에서 희망] 1. 새로운 불안의 시대)에서 우리의 희망을 위협하는 요소는 자연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다양한 인간악이라고 저의 생각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글을 계속하여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미디어와 연구자료들은 희망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 희망의 원천이 어디에 있느지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지겹고 고루하지만 그것을 알고 싶어서 글을 작성합니다 .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ㅇ 질문1 : 고대 전염병이 세계의 도시를 초토화하던 암흑 속에서도 희망의 원천을 어디서 제공받았는가?
ㅇ 질문2: 현재 코로나19 전염병이 세계의 도시를 초토화하는 암흑 같은 시기에 희망의 원천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제 생각에 질문1과 질문2에 대한 해답은 동일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갈’ 기본 골격 내지 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의 약함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대반전(The Great Reversal) 입니다.
고대 전염병을 연구한 역사사 카일 하퍼(Kyle Harper)는
어떻게 기독교가 그런 암담한 시기에 계속 성장하고 번성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해답이 오늘 되새김을 해야하는 주제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이것까지도 긍정적 과정으로 보았다.
현세는 본래 덧없는 것이며 더 큰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을 더 큰 이야기, 우주적 이야기, 영원한 이야기족으로 맞추는 것이었다.
그들도 이 세상에 살며 고통을 경험하고 남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부름받은 대로 현세의 이야기를 그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야기들 중의 하나로 보았다.
이면의 지도(map)는 앞서 말한 더 큰 그림이었다. ”
더 큰 이야기
초기 그리스도인은 최악의 역경조차도 하나님이 일일이 인도하시는 역사의 일부로 본것 같다.
또한 그 역사의 지향점은 그저 막연한 내세가 아니라, 우리 몸과 영혼이 부활하여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깊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모든 희망의 구심점이 되는 중대한 사건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성경에 쓰인 ‘희망’ 혹은 ‘소망’은 본래 ‘깊은 확신’을 뜻하는 헬라어 ‘엘피다’ 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의미가 약한 ‘호프(Hope)’로 번역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십자가와 부활’은 희망을 잃은 고대 로마 세상에 ‘산 소망’(living hope, NIV)을 주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베드로의 편지(베드로전서 1:3,21)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라고 상기시킨다.
이는 단지 지적인 신념이 아니라 베드로의 말대로 ‘산 소망(희망)’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영혼 깊은 곳에 그 희망이 심긴다.
우리의 존재 속으로 희망이 녹아들어 이제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능히 맞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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